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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베트남 생태여행기(손은기)
    손은기(연천군 전곡읍) 그동안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발이 꽁꽁 묶인지도 벌써 3년이 되었다. 3년 전 나의 마지막 해외조사지는 태국 카오야이 국립공원이었다. 열대우림에 들어가 코끼리, 긴팔원숭이, 코뿔새 등 다큐에서만 보던 야생동물을 관찰했는데, 그 당시 느꼈던 강렬한 희열이 지금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 기억으로 인해 지난 3년을 잘 버텨왔던 것 같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해외에서의 조사 경험이 떠 올라 다시 한 번 시도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가 격리가 없는 곳, 한국에서 가까운 곳, 물가가 싼 곳을 검색한 결과, 현실에 맞는 여러 조건을 합쳐 베트남으로의 생태관찰 여행을 결심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여행지를 정한 뒤 항공권부터 예약해두고, 바쁜 일상을 보내던 중 구체적인 일정도 잡지 못한 채 베트남 출발의 시간이 다가왔다. 출국 하루 전날, 태국에서의 국립공원 탐사가 떠 올라 황급히 서둘러 베트남 국립공원 탐사 프로그램을 예약했는데, 어떠한 이유인지 업체 측으로부터 취소 통보를 받았다. 은근히 국립공원 탐사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베트남 현지는 지금 우기라던데 날을 잘못 잡아 비가 많이 오는 것은 아닐지? 너무 덥지는 않을지? 설레임보다는 걱정을 떠안은 채 비행기에 올랐다. 장장 5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와 시간을 봤더니 한국보다 두 시간이 빨라 있었다. 거리에는 수많은 오토바이가 여기저기서 경적을 울렸고, 택시 기사의 호객행위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피곤함을 주었다. 베트남에 오기 전, 외국인 관광객, 특히 한국인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운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은터라 시작부터 택시 기사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일행은 결국 대중교통인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에는 예전 6-70년대 우리나라의 버스안내양 같은 여자 승무원이 한 분 계셨다. 승무원은 주로 승객 접대와 잔돈을 거슬러 주는 역할을 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의 거리는 버스를 타고 약 20분 거리에 위치했다. 캐리어가 없으면 10,000동, 캐리어가 있으면 20,000동을 지불해야 한다. 나는 캐리어가 있기 때문에 20,000동을 지불해야 되는데, 잔돈이 없어서 200,000동을 꺼냈다. 그러자 버스 기사와 승무원은 베트남어로 떠들며 빈정거리는 듯했다. 200,000동은 한국 돈으로 10,000원이고, 20,000동은 한국 돈으로 1,000원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1,000원 요금의 마을버스에서 10,000원을 내민 격이다. 게다가 베트남에서는 200,000동을 쓸 만한 상황이 드물어서 그런지 더욱 어이없어했던 것 같다. 이렇게 소소한 에피소드로 우리의 여행은 시작됐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 체크인을 하기 전 허기가 져서 치킨커리와 사탕수수 음료를 사 먹었다. 치킨커리에는 고수의 향이 가득 배어 있었고, 사탕수수 음료는 특유의 달짝지근한 맛이 났는데 둘 다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치킨커리 정식과 음료까지 마신 금액이 우리나라 돈으로 3,000원 남짓한 싼 가격이라 맛으로 투정부리기도 뭐했다. 숙소는 7층으로 배정받아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는데, 독특한 버튼이 눈에 들어왔다. 13층 버튼을 숫자 13이 아닌 12A로 표시해 놓은 것이 궁금했다.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은 베트남에서 13은 불행을 뜻하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숙소는 5성급 호텔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우리나라의 깔끔한 모텔 수준이었다. 하지만 향신료가 약한 조식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옥상에 설치된 수영장은 호치민 시내가 한눈에 들어와서 좋았다. 나는 호텔에 머무는 이틀 동안 조식을 먹은 뒤 항상 수영을 했다. 물도 시원하고, 경치도 좋아서 묵은 피로가 싹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이곳이 천국인 것만 같았다. 호텔에서 마주한 직원들의 상냥한 태도와 아련한 눈빛이 인상 깊었는데, 여느 동남아 국가들의 문화처럼 팁을 원하는 태도로 보였다. 그래도 호텔은 팁을 달라고 귀찮게 굴지는 않았는데, 로컬에서는 대놓고 팁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일 어이가 없었던 것은 편의점에서 거스름돈을 주지 않았던 일. 베트남에서 잔돈 정도는 받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돈을 지불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리고 잔돈 수준의 금액으로도 서비스가 달라지는 현지인들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호치민에 도착하고 처음 향한 관광지는 핑크성당이었다. 호치민 길거리는 전반적으로 음침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성당의 색이 밝아서 그런지 홍일점 마냥 눈에 확 들어왔다. 핑크성당은 우리나라 명동성당과 비슷한 디자인을 하고 있었는데, 분홍색이라 그런지 더 귀엽고 예뻤다. 그리고 자세한 운영 시스템은 모르지만, 주로 낮 시간대에 가면 문이 닫혀있었고, 해질 무렵에 가면 사람들이 몰려 문밖까지 예배를 하고 있었다. 핑크성당 건너편에는 베트남의 스타벅스라고도 불리는 콩카페가 있었는데, 열대과일을 가득 넣은 코코넛주스 맛이 일품이었다. 나는 해외에 갈 때 데이터 로밍을 하지 않는다. 평소 휴대폰에 의존하는 편이 아니라 휴대폰이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을 뿐더러, 이상하리만큼 해외에 나갈수록 일상과는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해외에 나가면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를 찾아 아지트로 삼는데, 이번엔 그런 아지트를 콩카페로 잡았다. 나는 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우리 대학원에서는 국내외 연수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전공과 관련된 곳에 방문하여 결과보고서를 제출하면 소정의 장학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이 연수지원 프로그램을 베트남에서 활용하려고 한다. 콩카페에서 택시타고 15분 정도 이동하면 다운타운이 나오는데, 이 동네를 상징하는 공원을 답사했다. 공원의 이름은 따오단. 우리나라로 치면 근린공원과 비슷한 개념의 도심 공원인데, 큼지막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열대우림을 연상케 했고, 관리가 되는 듯, 안 되어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공원 곳곳에는 연못, 사막, 정원 등 다양한 조경공간으로 볼거리를 주어 지루하지 않게 했다. 공원의 사람들은 대부분 현지인이었고, 외국인은 보이지 않았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조깅을 하고 있었는데, 종종 제기차기와 단체체조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옛날 중국에서도 봤던 모습이지만 음악에 맞춰 단체로 체조하는 모습이 되게 정겨워 보였다. 공동체 문화가 사라진 코로나 시대에 다시 찾아야 할 모습은 어쩌면 일상 속 체조로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우리는 이제부터 공원에 있는 생물을 샅샅이 찾아 기록하려고 한다. 따오단 공원에서는 어떤 생물을 만날 수 있을까? 따오단 공원에서 처음 만난 동물은 아프리카대왕달팽이였다. 발이 닿는 곳마다 흔하게 보이던 녀석들은 식물은 물론 칼슘을 섭취하기 위해 건물까지 갉아 먹는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한테는 뇌수막염을 일으키는 기생충을 옮길 수 있어 야생개체를 함부로 만지는 것은 위험한 행위이다. 유해생물로 낙인찍혀 전 세계적으로 찬밥 신세를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애완용으로 인기가 많다. 사막 존에서 빽빽한 가시덤불을 감상하고 있는데, 한 줄기에 난 커다란 혹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혹처럼 생긴 게 움직이기까지 한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펄~쩍 뛰어 달아났다. 정말 만나고 싶었던 종, 갈색나무개구리였다. 나는 가시덤불을 파헤치며 이 녀석을 쫓았다. 넓은 발바닥으로 기어오르고, 뛰어오르고. 그렇게 나를 농락하고서는 꽁꽁 숨어 버렸다. 1분 남짓한 짧은 만남이어서 그런지 이 친구와의 만남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갈색나무개구리를 보고 나서 은·엄폐를 하는 동물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꼼꼼하게 자연물을 살폈다. 다음으로 만난 생물은 울퉁불퉁한 나무뿌리와 비슷하게 생긴 녀석, 아시아검은안경두꺼비였다. 한쪽 눈은 다친 것 같아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두꺼비보다 더 무섭게 생겼다. 앞이 안 보여서 그런지 움직임이 없어 다른 생물들보다는 사진 촬영이 쉬웠다. 나무 밑동에서 작은 도마뱀을 관찰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는 듯 한 시선이 느껴졌다. 조심히 고개를 들어봤더니 나무 틈에서 팔뚝만 한 몸집에 동공이 수축되어 있는 화려한 도마뱀 한 마리가 보였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이 녀석도 놀랐는지 재빨리 몸을 숨긴다. 토카이도마뱀붙이였다. 토카이도마뱀붙이는 게코도마뱀속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도마뱀붙이 종이다. CITES 부속서 II급으로 지정된 국제적 멸종위기 야생생물이며 화려한 모습 때문에 애완동물 시장에서도 인기가 많다. 벤치에 앉아 잠깐 휴식을 취하려고 할 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 주위를 맴돈 녀석이 있다. 우리나라의 청설모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이 녀석은 어째 색이 하얀색이다. 혹시나 하고 다른 녀석들을 보니 모두 어두운색의 털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이 녀석은 루시즘에 걸린 것으로 짐작된다. 자연에서 루시즘에 걸린 야생동물을 보는 일은 드물다. 하필 오늘 내 앞에 저절로 나타나 주다니.. 예로부터 하얀색 동물을 길한 상징으로 여겼다는데..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어린 도마뱀을 만났다. 자신의 위장 능력이 뛰어난 줄 아는 이 도마뱀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꼬리를 건들여도 도망가지 않았다. 혹시 어디가 아픈가? 하는 생각에 몸을 툭툭 건들였더니 그제서야 위협을 느끼고 재빨리 도망간다. 같은 나무 위에서 이구아나를 닮은 커다란 도마뱀을 봤는데, 내가 다가갈수록 멀리 달아나더니 결국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말았다. 생김새가 전혀 달라서 이 둘은 다른 종인 줄 알았다. 하지만 Inaturalist(생물 기록 플랫폼)에 동정을 의뢰한 결과 이 두 종은 같은 종이었다. 번식기에 수컷은 이름처럼 푸른 머리를 한다고 하는데 그 화려한 모습을 언젠가는 꼭 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호치민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이 보았던 동물이다. 어느 건물이나 다닥다닥 붙어있다. 해가 저물수록 더 많은 수가 보였는데, 야간 불빛에 모인 날벌레를 잡아먹기 위한 행동으로 보였다. 이 녀석 역시 우리나라에서 애완동물로 인기가 높은 종이다. 우리나라 자연에서는 볼 수 없는 크고 화려한 모습에 잠시 매료됐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에 어디서 나오는 힘인지 스프링처럼 높이 뛰어 올랐던 녀석. 나뭇잎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지나치기 쉽다. 조사 막바지. 길 위에서 재빨리 움직이며 내 발 밑에 숨던 녀석. 우리나라 도마뱀과 비슷하게 생겼고, 꼬리 재생 흔적이 있었다. 이 외에도 다양한 곤충을 만났는데 일일이 기록하지는 못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좁은 면적에서 다양한 생물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약 2시간의 짧은 조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어둠이 짙어질수록 박쥐 무리가 하늘을 수놓았다. 멍하니 박쥐 무리의 군무를 감상하고 있는데,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따오단 공원 초입부에 있는 화장실은 창문 대신 빽빽한 나무로 가림 막을 대신했다. 화장실 내부에는 바퀴벌레와 도마뱀붙이가 많이 보였고, 다소 지저분했다. 볼 일을 다 보고 나오는데, 입구에서 한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이유는 화장실을 사용했으니 이용료를 지불하라는 것. 당황스러웠지만 한국 돈으로 75원 남짓한 적은 금액이라 군말 않고 지불했다. 계속 느끼는 것이지만 베트남에서는 눈뜨고 코 베이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니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어둠이 짙어지자 번화가를 제외한 길 가의 골목들은 더욱 음침해지기 시작했다. 현지인들은 무슨 의도인지 우리를 신기한 듯 쳐다봤고, 언제부터인가 한 남자가 우리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베트남에서는 소매치기가 잦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다. 나는 속으로 알리바바를 외칠 준비를 하며 짐을 꽉 붙들어 맸다. 다행스럽게도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진이 다 빠져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마지막 날 몸에 알르레기가 번지고, 돈도 다 떨어져서 나는 호치민에 남았고, 친구는 혼자 열대우림에 들어갔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시간이 다 돼서야 출국에 필요한 코로나19 검사가 생각났다. 우리는 부랴부랴 PCR 검사소를 찾았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병원이 일찍 문을 닫았다.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퀵으로 자가키트를 주문했는데, 약속 시간보다 퀵 기사가 먼저 도착했다. 나는 돈이 없어서 결제를 하려면 친구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친구가 도착하려면 1시간이나 남은 상황. 나는 콩카페에서 퀵기사를 숨죽여 지켜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퀵기사는 약속 장소에 우리가 나타나지 않자 화가 난 듯 발을 동동 구른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퀵기사한테 다가갔다. 퀵기사는 나보다 영어를 더 못했다. 온갖 설명에도 도통 소통이 되지 않자 퀵기사를 데리고 콩카페 사장님한테 갔다. 나는 콩카페 사장님한테 NO 머니!, NO 카드! 라고 운을 띄우며 콩글리시로 온갖 표현을 했는데, 기가 막히게도 사장님은 내 상황을 눈치챘다. 결국 사장님께서 비용을 대신 결제해 기사님을 돌려 보냈고, 내 짐을 다 맡긴 채 한 시간을 기다리니 친구가 도착했다. 호치민에 있는 동안 콩카페를 5번 방문했는데, 자주 방문해서 그런지 사장님께서도 내 얼굴을 익힌 듯 큰 의심을 하지 않고 돈을 빌려주신 것 같다. 이렇게 3박 5일간의 베트남 일정은 끝이 났다. 걱정한 것과는 다르게 비도 오지 않았고, 덥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열대우림을 못 가서 아쉬웠지만, 보다 편하게 다양한 생물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에는 꼭 베트남의 열대우림을 누비고 싶다! *조사에서 만난 생물들의 국명 명명은 영명을 직역한 수준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 출처:한국 외래생물 정보시스템
    • 오피니언
    • 기고
    2022-08-15
  • [기고]항일의 고장 연천, 더 늦기 전에 항일 유적지 정비해야
    올해 3.1절을 기해 연천 출신 독립유공자 11명이 추서 포상 결정되었다는 기사가 여러 언론에 났었다. 연천 주민으로서 또 군의회 의원으로서 너무 감개무량하고 뿌듯하다. 의정활동의 일환으로 집행부에 제안한 것이 받아들여져 실제 결실로 나타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그 감동은 더 크다. “의병(義兵)”은 국가가 위급해졌을 때 정부의 징발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일어나 적과 싸운 민간인을 말한다. 대체로 우리는 ‘의병’이라는 말을 들으면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구한말, 조선이 스러져갈 무렵에도 조선 각지에서 맹렬한 의병 활동이 있었다. 재작년 연천문화원의 3.1운동 100주년 기념 세미나에 패널로 참여하여 ‘연천의 항일의병과 3.1운동’이라는 주제로, 연천의 구한말 항일의병 활동을 소개하였다. 나는 그 원고를 준비하면서 마치 그 당시 의병 한분 한분을 직접 만나 뵙는 느낌이었다. 내가 정리한 연천의 의병은 총 27명인데, 나이는 대부분 20~30대이고 10대도 3명이나 있다. 직업은 농민이 대부분이고 소금 장수, 콩 장수, 붓 장수, 맷돌제조업자, 유생, 숭의전 참봉 등이다. 일본이 남겨놓은 <조선 폭도 토벌지>와 우리 측 사료집에 의하면 1908년 2월~1909년 말까지 연천에서 일본과 교전 중 사망한 의병이 115명이다. 주로 삭녕수비대, 개성수비대, 연천수비대, 마전헌병분견소, 문산헌병분견소의 헌병과 교전 중 사망하였다. 분견소, 수비대 구성원은 무장한 일본 병력이다. 당시 조선의 고위관리들은 일제가 주는 어마어마한 돈(병합은사금)과 자손만대 누릴 수 있는 작위를 수여 받고 나라를 그들에게 넘겼다. 그러나 연천에서 농사짓고, 소금과 콩을 팔며 살아가던 우리 군민들은 맹렬히 떨쳐 일어나서 기꺼이 자신들의 피를 고랑포구에, 원심원사 앞 법화골 골짜기에, 대광리 어느 산 아래 뿌렸다. 조사된 27명 의병 중에 독립유공자로 추서 받은 분이 몇 명이나 될까 해서 알아보았더니 8명만 독립유공자로 되어있었다. 나머지 19명은 그렇게 조용히 역사에 묻힐 판이었다. 나는 군청 담당과장께 나머지 분들도 추서 신청을 할 것을 제안했다. 과장은 흔쾌히 “군청에서 챙겼어야 할 일입니다. 바로 진행해야겠습니다.”라고 했다. 담당 부서에서 나머지 분들을 더 찾아내어 총 23명을 추서 신청하였고, 이번에 11명의 항일의병을 영예로운 독립유공자 자리에 앉혀드리게 된 것이다. 무척 감사하고 감격스럽고 보람된 순간이다. 기 추서된 분들을 합하면 연천출신 독립유공자는 총 42명이 된다. 재작년 연천 의병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미산면에 사시는 심상우 의병장 후손을 직접 찾아뵙고 함께 묘소 참배도 하였다. 심상우 의병이 총을 맞고 돌아가신 골짜기는 지금 수목장으로 개발되어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총탄 흔적이 있는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곳이 심상우 의병이 총을 맞고 돌아가신 자리라는 것은 자손들만 알 뿐이다. 다른 의병유적지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격렬했던 전투 장소인 대광리 소목개마을 근처, 내산리 법화골 골짜기, 마전군청과 마전향교가 있던 마전리 산 기슭... 지금도 그곳에는 110년 전에 조선을 지키기 위해 돌아가신 분들의 넋이 서려 있을 것이다. 위령제든 진혼제든 어떤 식으로든 그분들의 넋을 기리는 것이 필요하다. 연천은 곳곳이 살아있는 역사의 장이다. 항일운동 유적지만 보더라도 항일 의병유적지 19곳, 3.1만세 시위지 5곳, 기타 항일운동 유적지 10곳이 있다. 개발이 더 진행되기 전에 항일유적지를 정비해야 한다. 적당한 장소에 “항일의병 역사공원” 조성 및 “항일 독립운동 기념관”을 마련한다면 연천군민들께는 자긍심을 심어주고, 연천을 찾는 많은 분들께는 산 역사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 독립유공자가 42명이나 되는 고장에 걸맞은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끝으로 지면을 빌어 독립유공자 추서 신청에 힘쓰신 문화체육과 김남호 과장과 강상식 학예사 그리고 담당 직원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서희정 연천군의회 의원> ※ 본 기고문은 뉴스매거진2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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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5
  • [칼럼]국가지정문화재, 두루미잠자리 추가지정해야
    연천임진강 두루미류 도래지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지정 관련 민통선 밖 군남댐 하류 주요잠자리 추가지정해야.. 연천임진강 두루미류 도래지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지정 관련 검토중인 경기도 연천군 중면 횡산리 1194-1 외 민통선 밖인 군남홍수조절댐 하류 두루미 잠자리에 관해 추가지정을 요청한다. 지난 2000년부터 연천 임진강 일대의 두루미 모니터링과 보호활동을 하며 2014년까지 10년간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매년 실시하는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에 참여한 바 있다. 초기에는 연천군 중면 삼곶리 장군여울과 빙애여울에서 월동하며 먹이활동과 잠자리를 이용했었다. 2000년 한 가족 개체가 월동하다가 점차 늘게되어 현재와 같이 1천여 개체가 넘게되었다. 지난 해 12월부터 금년 1월15일, 2월18일,3월27일 두루미 조사를 마치기도 했다. 동시센서스와는 별도로 1월15일 서울시립대와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로 두루미 348개체, 재두루미 722개체,검은목두루미 1개체로 총 1,071개체가 확인되었다. 그중 군남댐 하류 지역에서 두루미 47개체, 재두루미 87개체 등 총 134개체가 확인된 바 있다. 특히 이번 겨울들어 이곳을 잠자리로 이용하는 개체가 급격히 늘어 20여차례 이상 관찰한 결과 두루미 잠자리로 확인되었다.(동영상, 사진자료 기록보관) 최근 민통선 내에서 활동하던 두루미류 이동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첫째, 군남댐 담수로 인한 장군여울 수몰로 잠자리와 휴식지가 사라진 점이다. 10월부터 이듬 해 5월까지 담수하는 기간과 10월말부터 3월말까지 두루미 월동기간과 겹치기 때문이다. 담수전 장군여울은 물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져 여의도와 같은 섬 형태로 되어 있어 면적도 넓고 삵과같은 천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천혜의 잠자리이다. 현재 많은 개체가 잠자리로 이용하는 빙애여울 보다 안전한 잠자리이기 때문이다. 빙애여울의 경우 많은 때에는 6~700여 개체가 밀집되어 몰려있기 때문에 일부 개체들이 겨울에도 얼지 않는 곳을 찾다보니 군남댐 하류에 오지않나 생각된다. 둘째, 두루미 월동지가 국내에 알려지면서 사진가들이 몰려들어 촬영을 위해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두루미를 위협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2년전에는 빙애여울을 떠나 오랫동안 비무장지대에서 잠을 자기도 한 적도 있다. 근래에는 연천지역에 ASF로 인해 민통선지역의 출입이 통제되면서 군남댐 하류 잠자리로 사진가들이 몰려들기도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시기에 두루미 도래지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은 매우 적절한 조치라 생각된다. 셋째, 군남댐 하류 두루미 잠자리는 군부대의 출입통제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임진강을 찾아온 야영객과 낚시꾼, 수석 수집가들로 인해 두루미들의 안전한 잠자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 최소한 군남댐에서 북삼교 사이 1km구간을 연천임진강 두루미류 도래지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지정 구역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대표 이석우>
    • 오피니언
    • 컬럼
    2022-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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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베트남 생태여행기(손은기)
    손은기(연천군 전곡읍) 그동안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발이 꽁꽁 묶인지도 벌써 3년이 되었다. 3년 전 나의 마지막 해외조사지는 태국 카오야이 국립공원이었다. 열대우림에 들어가 코끼리, 긴팔원숭이, 코뿔새 등 다큐에서만 보던 야생동물을 관찰했는데, 그 당시 느꼈던 강렬한 희열이 지금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 기억으로 인해 지난 3년을 잘 버텨왔던 것 같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해외에서의 조사 경험이 떠 올라 다시 한 번 시도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가 격리가 없는 곳, 한국에서 가까운 곳, 물가가 싼 곳을 검색한 결과, 현실에 맞는 여러 조건을 합쳐 베트남으로의 생태관찰 여행을 결심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여행지를 정한 뒤 항공권부터 예약해두고, 바쁜 일상을 보내던 중 구체적인 일정도 잡지 못한 채 베트남 출발의 시간이 다가왔다. 출국 하루 전날, 태국에서의 국립공원 탐사가 떠 올라 황급히 서둘러 베트남 국립공원 탐사 프로그램을 예약했는데, 어떠한 이유인지 업체 측으로부터 취소 통보를 받았다. 은근히 국립공원 탐사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베트남 현지는 지금 우기라던데 날을 잘못 잡아 비가 많이 오는 것은 아닐지? 너무 덥지는 않을지? 설레임보다는 걱정을 떠안은 채 비행기에 올랐다. 장장 5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와 시간을 봤더니 한국보다 두 시간이 빨라 있었다. 거리에는 수많은 오토바이가 여기저기서 경적을 울렸고, 택시 기사의 호객행위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피곤함을 주었다. 베트남에 오기 전, 외국인 관광객, 특히 한국인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운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은터라 시작부터 택시 기사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일행은 결국 대중교통인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에는 예전 6-70년대 우리나라의 버스안내양 같은 여자 승무원이 한 분 계셨다. 승무원은 주로 승객 접대와 잔돈을 거슬러 주는 역할을 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의 거리는 버스를 타고 약 20분 거리에 위치했다. 캐리어가 없으면 10,000동, 캐리어가 있으면 20,000동을 지불해야 한다. 나는 캐리어가 있기 때문에 20,000동을 지불해야 되는데, 잔돈이 없어서 200,000동을 꺼냈다. 그러자 버스 기사와 승무원은 베트남어로 떠들며 빈정거리는 듯했다. 200,000동은 한국 돈으로 10,000원이고, 20,000동은 한국 돈으로 1,000원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1,000원 요금의 마을버스에서 10,000원을 내민 격이다. 게다가 베트남에서는 200,000동을 쓸 만한 상황이 드물어서 그런지 더욱 어이없어했던 것 같다. 이렇게 소소한 에피소드로 우리의 여행은 시작됐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 체크인을 하기 전 허기가 져서 치킨커리와 사탕수수 음료를 사 먹었다. 치킨커리에는 고수의 향이 가득 배어 있었고, 사탕수수 음료는 특유의 달짝지근한 맛이 났는데 둘 다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치킨커리 정식과 음료까지 마신 금액이 우리나라 돈으로 3,000원 남짓한 싼 가격이라 맛으로 투정부리기도 뭐했다. 숙소는 7층으로 배정받아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는데, 독특한 버튼이 눈에 들어왔다. 13층 버튼을 숫자 13이 아닌 12A로 표시해 놓은 것이 궁금했다.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은 베트남에서 13은 불행을 뜻하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숙소는 5성급 호텔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우리나라의 깔끔한 모텔 수준이었다. 하지만 향신료가 약한 조식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옥상에 설치된 수영장은 호치민 시내가 한눈에 들어와서 좋았다. 나는 호텔에 머무는 이틀 동안 조식을 먹은 뒤 항상 수영을 했다. 물도 시원하고, 경치도 좋아서 묵은 피로가 싹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이곳이 천국인 것만 같았다. 호텔에서 마주한 직원들의 상냥한 태도와 아련한 눈빛이 인상 깊었는데, 여느 동남아 국가들의 문화처럼 팁을 원하는 태도로 보였다. 그래도 호텔은 팁을 달라고 귀찮게 굴지는 않았는데, 로컬에서는 대놓고 팁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일 어이가 없었던 것은 편의점에서 거스름돈을 주지 않았던 일. 베트남에서 잔돈 정도는 받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돈을 지불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리고 잔돈 수준의 금액으로도 서비스가 달라지는 현지인들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호치민에 도착하고 처음 향한 관광지는 핑크성당이었다. 호치민 길거리는 전반적으로 음침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성당의 색이 밝아서 그런지 홍일점 마냥 눈에 확 들어왔다. 핑크성당은 우리나라 명동성당과 비슷한 디자인을 하고 있었는데, 분홍색이라 그런지 더 귀엽고 예뻤다. 그리고 자세한 운영 시스템은 모르지만, 주로 낮 시간대에 가면 문이 닫혀있었고, 해질 무렵에 가면 사람들이 몰려 문밖까지 예배를 하고 있었다. 핑크성당 건너편에는 베트남의 스타벅스라고도 불리는 콩카페가 있었는데, 열대과일을 가득 넣은 코코넛주스 맛이 일품이었다. 나는 해외에 갈 때 데이터 로밍을 하지 않는다. 평소 휴대폰에 의존하는 편이 아니라 휴대폰이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을 뿐더러, 이상하리만큼 해외에 나갈수록 일상과는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해외에 나가면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를 찾아 아지트로 삼는데, 이번엔 그런 아지트를 콩카페로 잡았다. 나는 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우리 대학원에서는 국내외 연수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전공과 관련된 곳에 방문하여 결과보고서를 제출하면 소정의 장학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이 연수지원 프로그램을 베트남에서 활용하려고 한다. 콩카페에서 택시타고 15분 정도 이동하면 다운타운이 나오는데, 이 동네를 상징하는 공원을 답사했다. 공원의 이름은 따오단. 우리나라로 치면 근린공원과 비슷한 개념의 도심 공원인데, 큼지막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열대우림을 연상케 했고, 관리가 되는 듯, 안 되어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공원 곳곳에는 연못, 사막, 정원 등 다양한 조경공간으로 볼거리를 주어 지루하지 않게 했다. 공원의 사람들은 대부분 현지인이었고, 외국인은 보이지 않았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조깅을 하고 있었는데, 종종 제기차기와 단체체조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옛날 중국에서도 봤던 모습이지만 음악에 맞춰 단체로 체조하는 모습이 되게 정겨워 보였다. 공동체 문화가 사라진 코로나 시대에 다시 찾아야 할 모습은 어쩌면 일상 속 체조로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우리는 이제부터 공원에 있는 생물을 샅샅이 찾아 기록하려고 한다. 따오단 공원에서는 어떤 생물을 만날 수 있을까? 따오단 공원에서 처음 만난 동물은 아프리카대왕달팽이였다. 발이 닿는 곳마다 흔하게 보이던 녀석들은 식물은 물론 칼슘을 섭취하기 위해 건물까지 갉아 먹는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한테는 뇌수막염을 일으키는 기생충을 옮길 수 있어 야생개체를 함부로 만지는 것은 위험한 행위이다. 유해생물로 낙인찍혀 전 세계적으로 찬밥 신세를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애완용으로 인기가 많다. 사막 존에서 빽빽한 가시덤불을 감상하고 있는데, 한 줄기에 난 커다란 혹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혹처럼 생긴 게 움직이기까지 한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펄~쩍 뛰어 달아났다. 정말 만나고 싶었던 종, 갈색나무개구리였다. 나는 가시덤불을 파헤치며 이 녀석을 쫓았다. 넓은 발바닥으로 기어오르고, 뛰어오르고. 그렇게 나를 농락하고서는 꽁꽁 숨어 버렸다. 1분 남짓한 짧은 만남이어서 그런지 이 친구와의 만남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갈색나무개구리를 보고 나서 은·엄폐를 하는 동물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꼼꼼하게 자연물을 살폈다. 다음으로 만난 생물은 울퉁불퉁한 나무뿌리와 비슷하게 생긴 녀석, 아시아검은안경두꺼비였다. 한쪽 눈은 다친 것 같아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두꺼비보다 더 무섭게 생겼다. 앞이 안 보여서 그런지 움직임이 없어 다른 생물들보다는 사진 촬영이 쉬웠다. 나무 밑동에서 작은 도마뱀을 관찰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는 듯 한 시선이 느껴졌다. 조심히 고개를 들어봤더니 나무 틈에서 팔뚝만 한 몸집에 동공이 수축되어 있는 화려한 도마뱀 한 마리가 보였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이 녀석도 놀랐는지 재빨리 몸을 숨긴다. 토카이도마뱀붙이였다. 토카이도마뱀붙이는 게코도마뱀속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도마뱀붙이 종이다. CITES 부속서 II급으로 지정된 국제적 멸종위기 야생생물이며 화려한 모습 때문에 애완동물 시장에서도 인기가 많다. 벤치에 앉아 잠깐 휴식을 취하려고 할 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 주위를 맴돈 녀석이 있다. 우리나라의 청설모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이 녀석은 어째 색이 하얀색이다. 혹시나 하고 다른 녀석들을 보니 모두 어두운색의 털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이 녀석은 루시즘에 걸린 것으로 짐작된다. 자연에서 루시즘에 걸린 야생동물을 보는 일은 드물다. 하필 오늘 내 앞에 저절로 나타나 주다니.. 예로부터 하얀색 동물을 길한 상징으로 여겼다는데..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어린 도마뱀을 만났다. 자신의 위장 능력이 뛰어난 줄 아는 이 도마뱀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꼬리를 건들여도 도망가지 않았다. 혹시 어디가 아픈가? 하는 생각에 몸을 툭툭 건들였더니 그제서야 위협을 느끼고 재빨리 도망간다. 같은 나무 위에서 이구아나를 닮은 커다란 도마뱀을 봤는데, 내가 다가갈수록 멀리 달아나더니 결국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말았다. 생김새가 전혀 달라서 이 둘은 다른 종인 줄 알았다. 하지만 Inaturalist(생물 기록 플랫폼)에 동정을 의뢰한 결과 이 두 종은 같은 종이었다. 번식기에 수컷은 이름처럼 푸른 머리를 한다고 하는데 그 화려한 모습을 언젠가는 꼭 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호치민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이 보았던 동물이다. 어느 건물이나 다닥다닥 붙어있다. 해가 저물수록 더 많은 수가 보였는데, 야간 불빛에 모인 날벌레를 잡아먹기 위한 행동으로 보였다. 이 녀석 역시 우리나라에서 애완동물로 인기가 높은 종이다. 우리나라 자연에서는 볼 수 없는 크고 화려한 모습에 잠시 매료됐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에 어디서 나오는 힘인지 스프링처럼 높이 뛰어 올랐던 녀석. 나뭇잎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지나치기 쉽다. 조사 막바지. 길 위에서 재빨리 움직이며 내 발 밑에 숨던 녀석. 우리나라 도마뱀과 비슷하게 생겼고, 꼬리 재생 흔적이 있었다. 이 외에도 다양한 곤충을 만났는데 일일이 기록하지는 못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좁은 면적에서 다양한 생물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약 2시간의 짧은 조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어둠이 짙어질수록 박쥐 무리가 하늘을 수놓았다. 멍하니 박쥐 무리의 군무를 감상하고 있는데,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따오단 공원 초입부에 있는 화장실은 창문 대신 빽빽한 나무로 가림 막을 대신했다. 화장실 내부에는 바퀴벌레와 도마뱀붙이가 많이 보였고, 다소 지저분했다. 볼 일을 다 보고 나오는데, 입구에서 한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이유는 화장실을 사용했으니 이용료를 지불하라는 것. 당황스러웠지만 한국 돈으로 75원 남짓한 적은 금액이라 군말 않고 지불했다. 계속 느끼는 것이지만 베트남에서는 눈뜨고 코 베이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니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어둠이 짙어지자 번화가를 제외한 길 가의 골목들은 더욱 음침해지기 시작했다. 현지인들은 무슨 의도인지 우리를 신기한 듯 쳐다봤고, 언제부터인가 한 남자가 우리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베트남에서는 소매치기가 잦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다. 나는 속으로 알리바바를 외칠 준비를 하며 짐을 꽉 붙들어 맸다. 다행스럽게도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진이 다 빠져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마지막 날 몸에 알르레기가 번지고, 돈도 다 떨어져서 나는 호치민에 남았고, 친구는 혼자 열대우림에 들어갔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시간이 다 돼서야 출국에 필요한 코로나19 검사가 생각났다. 우리는 부랴부랴 PCR 검사소를 찾았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병원이 일찍 문을 닫았다.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퀵으로 자가키트를 주문했는데, 약속 시간보다 퀵 기사가 먼저 도착했다. 나는 돈이 없어서 결제를 하려면 친구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친구가 도착하려면 1시간이나 남은 상황. 나는 콩카페에서 퀵기사를 숨죽여 지켜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퀵기사는 약속 장소에 우리가 나타나지 않자 화가 난 듯 발을 동동 구른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퀵기사한테 다가갔다. 퀵기사는 나보다 영어를 더 못했다. 온갖 설명에도 도통 소통이 되지 않자 퀵기사를 데리고 콩카페 사장님한테 갔다. 나는 콩카페 사장님한테 NO 머니!, NO 카드! 라고 운을 띄우며 콩글리시로 온갖 표현을 했는데, 기가 막히게도 사장님은 내 상황을 눈치챘다. 결국 사장님께서 비용을 대신 결제해 기사님을 돌려 보냈고, 내 짐을 다 맡긴 채 한 시간을 기다리니 친구가 도착했다. 호치민에 있는 동안 콩카페를 5번 방문했는데, 자주 방문해서 그런지 사장님께서도 내 얼굴을 익힌 듯 큰 의심을 하지 않고 돈을 빌려주신 것 같다. 이렇게 3박 5일간의 베트남 일정은 끝이 났다. 걱정한 것과는 다르게 비도 오지 않았고, 덥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열대우림을 못 가서 아쉬웠지만, 보다 편하게 다양한 생물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에는 꼭 베트남의 열대우림을 누비고 싶다! *조사에서 만난 생물들의 국명 명명은 영명을 직역한 수준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 출처:한국 외래생물 정보시스템
    • 오피니언
    • 기고
    2022-08-15
  • [기고]항일의 고장 연천, 더 늦기 전에 항일 유적지 정비해야
    올해 3.1절을 기해 연천 출신 독립유공자 11명이 추서 포상 결정되었다는 기사가 여러 언론에 났었다. 연천 주민으로서 또 군의회 의원으로서 너무 감개무량하고 뿌듯하다. 의정활동의 일환으로 집행부에 제안한 것이 받아들여져 실제 결실로 나타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그 감동은 더 크다. “의병(義兵)”은 국가가 위급해졌을 때 정부의 징발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일어나 적과 싸운 민간인을 말한다. 대체로 우리는 ‘의병’이라는 말을 들으면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구한말, 조선이 스러져갈 무렵에도 조선 각지에서 맹렬한 의병 활동이 있었다. 재작년 연천문화원의 3.1운동 100주년 기념 세미나에 패널로 참여하여 ‘연천의 항일의병과 3.1운동’이라는 주제로, 연천의 구한말 항일의병 활동을 소개하였다. 나는 그 원고를 준비하면서 마치 그 당시 의병 한분 한분을 직접 만나 뵙는 느낌이었다. 내가 정리한 연천의 의병은 총 27명인데, 나이는 대부분 20~30대이고 10대도 3명이나 있다. 직업은 농민이 대부분이고 소금 장수, 콩 장수, 붓 장수, 맷돌제조업자, 유생, 숭의전 참봉 등이다. 일본이 남겨놓은 <조선 폭도 토벌지>와 우리 측 사료집에 의하면 1908년 2월~1909년 말까지 연천에서 일본과 교전 중 사망한 의병이 115명이다. 주로 삭녕수비대, 개성수비대, 연천수비대, 마전헌병분견소, 문산헌병분견소의 헌병과 교전 중 사망하였다. 분견소, 수비대 구성원은 무장한 일본 병력이다. 당시 조선의 고위관리들은 일제가 주는 어마어마한 돈(병합은사금)과 자손만대 누릴 수 있는 작위를 수여 받고 나라를 그들에게 넘겼다. 그러나 연천에서 농사짓고, 소금과 콩을 팔며 살아가던 우리 군민들은 맹렬히 떨쳐 일어나서 기꺼이 자신들의 피를 고랑포구에, 원심원사 앞 법화골 골짜기에, 대광리 어느 산 아래 뿌렸다. 조사된 27명 의병 중에 독립유공자로 추서 받은 분이 몇 명이나 될까 해서 알아보았더니 8명만 독립유공자로 되어있었다. 나머지 19명은 그렇게 조용히 역사에 묻힐 판이었다. 나는 군청 담당과장께 나머지 분들도 추서 신청을 할 것을 제안했다. 과장은 흔쾌히 “군청에서 챙겼어야 할 일입니다. 바로 진행해야겠습니다.”라고 했다. 담당 부서에서 나머지 분들을 더 찾아내어 총 23명을 추서 신청하였고, 이번에 11명의 항일의병을 영예로운 독립유공자 자리에 앉혀드리게 된 것이다. 무척 감사하고 감격스럽고 보람된 순간이다. 기 추서된 분들을 합하면 연천출신 독립유공자는 총 42명이 된다. 재작년 연천 의병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미산면에 사시는 심상우 의병장 후손을 직접 찾아뵙고 함께 묘소 참배도 하였다. 심상우 의병이 총을 맞고 돌아가신 골짜기는 지금 수목장으로 개발되어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총탄 흔적이 있는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곳이 심상우 의병이 총을 맞고 돌아가신 자리라는 것은 자손들만 알 뿐이다. 다른 의병유적지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격렬했던 전투 장소인 대광리 소목개마을 근처, 내산리 법화골 골짜기, 마전군청과 마전향교가 있던 마전리 산 기슭... 지금도 그곳에는 110년 전에 조선을 지키기 위해 돌아가신 분들의 넋이 서려 있을 것이다. 위령제든 진혼제든 어떤 식으로든 그분들의 넋을 기리는 것이 필요하다. 연천은 곳곳이 살아있는 역사의 장이다. 항일운동 유적지만 보더라도 항일 의병유적지 19곳, 3.1만세 시위지 5곳, 기타 항일운동 유적지 10곳이 있다. 개발이 더 진행되기 전에 항일유적지를 정비해야 한다. 적당한 장소에 “항일의병 역사공원” 조성 및 “항일 독립운동 기념관”을 마련한다면 연천군민들께는 자긍심을 심어주고, 연천을 찾는 많은 분들께는 산 역사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 독립유공자가 42명이나 되는 고장에 걸맞은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끝으로 지면을 빌어 독립유공자 추서 신청에 힘쓰신 문화체육과 김남호 과장과 강상식 학예사 그리고 담당 직원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서희정 연천군의회 의원> ※ 본 기고문은 뉴스매거진2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오피니언
    • 기고
    2022-06-25
  • [칼럼]국가지정문화재, 두루미잠자리 추가지정해야
    연천임진강 두루미류 도래지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지정 관련 민통선 밖 군남댐 하류 주요잠자리 추가지정해야.. 연천임진강 두루미류 도래지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지정 관련 검토중인 경기도 연천군 중면 횡산리 1194-1 외 민통선 밖인 군남홍수조절댐 하류 두루미 잠자리에 관해 추가지정을 요청한다. 지난 2000년부터 연천 임진강 일대의 두루미 모니터링과 보호활동을 하며 2014년까지 10년간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매년 실시하는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에 참여한 바 있다. 초기에는 연천군 중면 삼곶리 장군여울과 빙애여울에서 월동하며 먹이활동과 잠자리를 이용했었다. 2000년 한 가족 개체가 월동하다가 점차 늘게되어 현재와 같이 1천여 개체가 넘게되었다. 지난 해 12월부터 금년 1월15일, 2월18일,3월27일 두루미 조사를 마치기도 했다. 동시센서스와는 별도로 1월15일 서울시립대와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로 두루미 348개체, 재두루미 722개체,검은목두루미 1개체로 총 1,071개체가 확인되었다. 그중 군남댐 하류 지역에서 두루미 47개체, 재두루미 87개체 등 총 134개체가 확인된 바 있다. 특히 이번 겨울들어 이곳을 잠자리로 이용하는 개체가 급격히 늘어 20여차례 이상 관찰한 결과 두루미 잠자리로 확인되었다.(동영상, 사진자료 기록보관) 최근 민통선 내에서 활동하던 두루미류 이동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첫째, 군남댐 담수로 인한 장군여울 수몰로 잠자리와 휴식지가 사라진 점이다. 10월부터 이듬 해 5월까지 담수하는 기간과 10월말부터 3월말까지 두루미 월동기간과 겹치기 때문이다. 담수전 장군여울은 물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져 여의도와 같은 섬 형태로 되어 있어 면적도 넓고 삵과같은 천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천혜의 잠자리이다. 현재 많은 개체가 잠자리로 이용하는 빙애여울 보다 안전한 잠자리이기 때문이다. 빙애여울의 경우 많은 때에는 6~700여 개체가 밀집되어 몰려있기 때문에 일부 개체들이 겨울에도 얼지 않는 곳을 찾다보니 군남댐 하류에 오지않나 생각된다. 둘째, 두루미 월동지가 국내에 알려지면서 사진가들이 몰려들어 촬영을 위해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두루미를 위협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2년전에는 빙애여울을 떠나 오랫동안 비무장지대에서 잠을 자기도 한 적도 있다. 근래에는 연천지역에 ASF로 인해 민통선지역의 출입이 통제되면서 군남댐 하류 잠자리로 사진가들이 몰려들기도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시기에 두루미 도래지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은 매우 적절한 조치라 생각된다. 셋째, 군남댐 하류 두루미 잠자리는 군부대의 출입통제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임진강을 찾아온 야영객과 낚시꾼, 수석 수집가들로 인해 두루미들의 안전한 잠자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 최소한 군남댐에서 북삼교 사이 1km구간을 연천임진강 두루미류 도래지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지정 구역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대표 이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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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5
  • [취재수첩]말뚝이 되어 버린 단풍나무
    동두천시 보산주공아파트, '낙엽 떨어진다' 민원에 30년된 단풍나무 44그루 싹뚝 지난 19일 동두천시 보산동 보산주공아파트에 1990년4월15일 준공 당시 심었던 44그루의 단풍나무 가지치기 작업이 진행됐다. 단풍나무는 아파트 5층 높이의 크기로 아파트를 아늑하게 감싸주며 주변 소음과 여름철 강한 햇빛을 막아주는 그늘막이었다. 베란다 창문을 열면 우거진 녹음과 함께 박새,곤줄박이,쇠박새,진박새,쇠딱따구리와의 소통공간이었다. 이날 오전부터 동두천시 공원녹지과 소속 산불감시 진압요원들이 출동해 가지치기를 한다는 명분으로 30년된 단풍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다. 동두천시 관계자에 의하면 "인근 빌라주민들이 아파트내 식재된 단풍나무에서 담장밖 도로로 낙엽이 많이 떨어져 불편하다는 민원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또한 입주자대표 측에서도 지난 해부터 줄곧 가지치기를 요구해 왔다는 이유로 동두천시 예산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렵게 작업을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게다가 산불감시요원들이 근무지를 이탈하면서까지 공공장소도 아닌 사유지역에서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 공무를 수행한 것이다. 아파트 관리소 관계자에 의하면 가지치기 작업을 위해서는 수백여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동안 자체인력으로 최소한의 가지치기 작업이 이루어져 왔으나 이번 같은 규모의 작업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한 요구로 가지치기 작업이 강행된 것이다. 시청 담당공무원도 작업현장에 나가 지켜봤다고 한다. 처음에는 작업자들에게 가지치기를 적정한 수준으로 할 것을 지시했지만 민원을 제기한 당사자가 "가지를 더 자르라는 강한 요구로 거절하기 어려워 이런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아무리 민원이라 할지라도 공적인 영역에서 처리할 것이 있고, 처리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애당초 처리할 수 없는 일을 힘 있거나 영향력이 있는 민원인의 강한 압력으로 처리해 준다면 과연 공정한 사회가 이루어질까? 아파트 입주민들의 대표성이 있다는 사람은 얼마나 주민들의 동의를 얻었을까? 전체 입주민중 몇명이 동의하는지 몇명이 반대하는지 증빙할 수 있는 근거도 없이 주민들의 의견이라며 다짜고짜 목소리만 높여 가지치기를 강행한 것이다. 아마 처음으로 작업하는 일이니 만큼 내년,후년을 대비해 더욱 깊게 잘라달라고 요구하며 그만큼 경제적인 이득을 계산했을 것이다. 더우기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통장'이라는 직책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동두천시 공원녹지과 관계자도 "가지치기의 정도가 심했다"며, 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서명부라든가 민원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이 같은 이유로 다른 곳에서도 아파트내 가지치기를 요청하면 모두 들어줄 것인가? 공공기관이 중심을 지키지 못하고 나쁜 의도를 가진 특정민원인의 편을 들어준다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이로 인해 30년 전 아파트가 처음 건설될 때부터 조성한 나무 수십그루가 불과 며칠사이에 무성하던 모습을 잃은 것이다. 나무보호를 위해서는 특정 개인의 욕심으로 경관을 훼손하지 않는 성숙한 시민의식 제고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고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낙엽이 많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건너 편 아파트 안에 있는 나무를 가지치기 해 달라는 이웃 주민들도 너무 이기적이다. 이런 분들이 과연 동두천시 조례로 제정된 '내 집 앞 눈 치우기'나 제대로 할지 의문이 간다. 나무는 우리에게 많은 이로움을 준다. 나무는 우리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많은 생명체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맑은 공기를 제공한다. 최근 기후변화에 더불어 도시 열섬 방지, 도시환경 조절, 도시 생태계 연결 역할을 하며, 요즘같이 지구온난화와 황사, 미세먼지가 심각할 때에는 더욱 절실하다. 우리가 사는 지구의 허파역할을 하는 나무를 보호는 못 할 망정 훼손할 것인가? 가지치기 문제는 우리 지역뿐 아니라 나라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의 무분별하고 주먹구구식 가지치기가 많은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다. 나무의 본래 형태를 괴물로 만들고 경관을 훼손하고 도심을 삭막하게 하는 것에 자치단체가 앞장서고 있다. 뒤늦게 서울시와수원시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에서는 가로수 경관 조례를 제정해 구체적인 메뉴얼을 정해놓았다. 늦게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최근 SNS상에서 "가로수 가지치기 피해 시민제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어 147명의 회원이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가지치기 피해 사례를 공유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강 건너 불 보듯 바라보고만 있던 입장에서 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잘못된 가지치기 피해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며 지자체에서도 조례 제정을 통해 구체적인 메뉴얼을 만드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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